광주 사적지(29개소)


제20호 전력을 모은 시민들
광주공원 광장-시민군 편성지
광주 남구 중앙로107번길 15

광주공원 광장은 예로부터 크고 작은 집회와 행사가 자주 개최되는 곳이었다. 5·18민중항쟁에서 광주공원 광장은 시민들의 집결지와 계엄군에 대한 항거를 준비하던 장소로 활용되었다. 5월 18일 오후 광주공원에 모인 시위대는 대열을 이루어 전남도청 방면으로 진출했는데, 태평극장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다가 시외버스공용터미널로 향했다. 5월 19일 오후에도 광주공원 부근에서 계엄군과 시위대가 충돌했으며, 저녁에는 시위대가 수천 명에 이르렀다. 광주공원 광장에서 시위대가 형성되고, 충돌이 발생하자, 5월 20일 계엄군은 제11공수여단 제12지역대를 광주공원에 배치했다.


5월 21일 오후부터는 광주공원 광장에 광주ㆍ전남지역에서 가져온 무기들이 속속 집결되었다. 수백 명의 청년들이 계엄군과 맞서겠다고 모여들었다. 처음에는 누구나 총을 받을 수 있었으나, 얼마 후부터는 예비역 장교나 하사관 등이 중심이 되어 일정한 선발 기준을 거쳐 무기가 지급되었고, 군대와 같은 편재로 조직되었다.


청년들은 계엄군과 전투를 전개하거나 경비 등을 수행할 인원 100여 명과 정찰, 감시, 외곽 경계, 치안 유지 등을 신속하게 수행할 인원 60여 명으로 구분되었다. 일종의 기동부대는 대략 10명을 단위로 편성되었고, 차량과 무기 등이 지급되었다.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이들을 ‘시민군’이라고 불렀고, 5월 24일 발간된 ?투사회보?제7호에는 시민군이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 시민들은 차량을 이용하여 계엄군을 압박했는데, 오전부터 장갑차도 보유하고 있었다.


계엄군이 철수한 이후에도 광주공원 광장과 시민회관은 시민군의 주요 거점이었다. 시민군은 차량을 등록하고, 편재를 새롭게 했다. 시민군의 지휘부는 도청으로 이동했고, 도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시민군이 상당했으나, 광주공원에도 시민군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5월 27일 계엄군의 진압작전 시 광주공원 광장은 주요 목표가 되었다. 제7공수여단 특공조가 광주공원의 진압을 담당했는데, 시민군은 없었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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