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사적지(29개소)


제10호 헌혈과 봉사의 산실
광주기독병원
광주 남구 양림로 37

광주기독병원은 다른 병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광주기독병원에는 계엄군이 출입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주 방면으로 진출하는 주요 도로에 위치하고 있어 차량의 이동이 많았다. 당시 광주기독병원은 광주에서 세번째로 큰 규모의 병원이어서 많은 부상자들이 후송되었다. 국군광주병원을 경유하여 이리공단에서 긴급하게 들여온 수술용 산소 100통 가운데 30통이 광주기독병원으로 전달되었다는 점은 이곳에서 많은 수술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다른 병원들과 마찬가지로, 광주기독병원에서도 의료인과 시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부상자를 치료하고 간호했다. 전남대학교 병원과 광주적십자병원의 부상자가 광주기독병원으로 재 이송되기도 했으나, 이곳도 환자가 많기는 마찬가지였다. 입원실과 침대가 부족하여 복도에 침상을 놓고 부상자를 치료했으며, 수술실은 쉼 없이 가동되었다. 의사들은 수술 과정에서 꺼낸 총탄을 모아 촬영했는데, 이 사진들은 계엄군의 극단적인 진압을 입증하는 자료로 전해지고 있다.


광주기독병원과 관련한 슬픈 사연은 광주춘태여자상업고등학교(현 전남여자상업고등학교, 1980년 12월 교명 변경) 3학년 박금희의 죽음이다. 그녀는 어른들의 만류에도 광주기독교병원에서 헌혈을 했다. 21일 귀가하던 박금희는 총탄에 맞아 방금 전 자신이 헌혈을 했던 광주기독병원으로 후송되었다. 박금희의 죽음은 수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불러일으켰고, ‘오월의 꽃’으로 부활했다.

 

광주기독병원에도 정보원들이 출입했으며, 당국이 조사를 위해 환자를 연행하기도 했다. 심지어 의료인들도 당국의 조사를 받았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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